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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의 진화. 춘추전국시대 노자와 진화생리학

by 최광석 2023.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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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시대를 살았던 노자와 그 제자 집단에 의해 편집되었다고 알려진 [도덕경(道德經)]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하늘아랫사람들이 모두 아름다움의 아름다움 됨을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못생김이다.

하늘아랫사람들이 모두 좋음의 좋음 됨을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좋지 못함이다.”

(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 皆知善之爲善 斯不善已¹)

 

 

이 글은 아름다움(美)과 좋음(善)이 상대적으로 결정됨을 이야기한다. 내가 봐서 아름다운 게 물고기 눈에는 못생기게 보일 수 있다. 총각 참치가 아가씨 참치의 아름다운 몸매를 좋아할 수는 있지만 인간의 눈으로 보면 둘 다 초밥 재료로 보일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배우 이병헌과 김태희는 물고기 눈에 단지 도망가야 할 괴물일 뿐이다.

 

노자 동상

 

아름다움과 좋음이 보는 관점에 따라 상대적으로 달라진다는 말은 내가 바라보는 대상과 겪는 사건의 절대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내가 아름답다고 여기는 그녀는 정말로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지녔다고 할 수 있는가?”, “내가 착하다고 여기는 그놈은 정말 괜찮은 놈일까?” 그렇다면 모든 아름다움이 단지 보는 관점에 따라서 다르게 결정되는 것일까?

재미있게도 인간에게 있어 아름다움은 상대적인 부분만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텍사스 주립대학교 소속 진화심리학자인 디벤드라 싱(Devendra Singh) 교수는 서로 다른 사회에 속한 남자가 공통적으로 허리-엉덩이 비율(WHR, waist-to-hip ratio : 허리둘레를 엉덩이둘레로 나눈 것)이 낮은 여자의 모습을 더 선호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실험을 수행했다. 싱 교수의 실험에 참가한 남자 대다수는 WHR이 0.7인 여자를 선호하고, 대다수의 여자는 WHR이 0.9인 남자를 선호했다. ²

 

엉덩이둘레에 따른 허리 비율이 0.7 정도인 여자들을 남자들이 더 좋아하는 이유를 싱 교수는 건강에서 찾는다. 0.7에 가까울수록 당뇨, 고혈압, 심장마비, 뇌졸중, 담낭 관련 질병 등 체지방이 높음으로써 생기는 질환이 적어 출산능력이 더 뛰어난 여자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따라서 허리가 가는 여자를 찾는 남자는 무의식 중에 보다 건강하고 출산능력이 높은 여자를 구하는 셈이 된다.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Ape_skeletons_gl.png

 

인간의 몸은 중력장 안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진화해 왔다. 수백만 년의 이족직립보행(Bipedalism) 연습을 거쳐 원숭이 체형에서 현재의 두 발로 우뚝 선 호모 사피엔스 체형으로 변화해 왔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고관절은 길어지고 골반강이 가로로 넓게 변화하였다. 붕괴되어 있었던 족궁은 살아나고 골반의 안정성을 높이는 중둔근의 기능이 강화되었다. 척추는 전만과 후만이 반복되는 스프링 구조로 바뀌었고 두개골 안의 뇌 용량은 약 1360cc 정도로 150만 년 전에 살았던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 도구의 인간)의 세 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런 변화를 통해 굴곡 성향이 강했던 몸은 신전형으로 바뀌었다. 다시 말해 인간은 끊임없는 진화 과정을 거쳐 구부정한 체형에서 가슴을 활짝 편 체형으로 바뀌어 온 것이다.

 

진화심리학자들의 논리를 빌리자면 남자든 여자든 진화 과정에서 후대에 나타나는 체형을 선호한다. 쉽게 말해 남자들은 허리 라인 좋고, 다리 길고, 허리와 골반 비율이 0.7 정도에 가까우며 가슴을 활짝 펴고 당당하게 걷는 여성에게 호감이 간다. 이건 비율이 조금 다를 뿐 여자가 바라보는 남자도 마찬가지다. 호감이 가는 몸은 바른 자세를 하고 있다. 그리고 바른 자세는 자연선택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DNA가 무의식 중에 더 나은 유전자를 선택하는 과정이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선택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이러한 상호작용은 지구환경의 변화와 피드백하면서 현재의 멋진 남자, 아름다운 여자상을 만들어 왔을 것이다.

 

바야흐로 몸의 시대다. 식스팩을 가진 남자, 꿀벅지를 가진 여자를 선호하고 척추와 골반 움직임이 좋은 아이돌에 열광하는 게 한 나라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로 퍼져 나가는 흐름이 되었다. 하지만 비율 좋은 몸을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은 이미 진화 과정에서 결정된 것이라는 게 호미니드(Hominid, 현생 인류를 이루는 직립 보행 영장류)의 발달사를 연구하는 많은 과학자들의 견해다. 35만 년 전 유럽을 활보하고 다녔다는 네안데르탈인이 다시 살아난다고 해도 소녀시대를 보고 열광하지 않을까? WHR이 0.7인 ‘아름다운(?)’ 여성을 좋아하는 것은 수백만 년의 진화를 통해 몸에 각인된 결과이다. 인간의 진화사에서 보면 35만 년 전은 그리 멀지 않은 과거라고 할 수 있다.

 

사진: Unsplash 의 Charles Gaudreault

 

 

비율 좋은 몸은 균형 잡힌 몸, 바른 자세와 바른 체형을 가진 몸을 말한다. 좌우 어깨가 대칭이고, 머리는 목 위에, 목은 가슴 위에 바르게 위치해 있어야 보기에 좋다. ³ 가슴은 무너져 있지 않고, 척추는 휘어져 있지 않으며, 골반은 비틀려 있지 않아야 눈이 즐겁다. 골격계의 대칭뿐만 아니라 그 위를 덮고 있는 연부조직, 즉 근육과 피부 상태가 건강하고 탄력 있으며 전후좌우에서 봤을 때 적당한 볼륨감을 갖고 있으면 자연스레 시선이 간다. 이렇게 균형 좋은 사람을 선호하는 것은 속물적인 인간에게 나타나는 유물론적 선택 기준이 아니라 DNA의 명령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DNA에 ‘바르다’에 대한 평균적인 기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노자가 이야기 하는 것처럼 아름다움엔 상대적 기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진화심리학자들이 제시하는 절대적인 기준도 공존하고 있다. 살집이 있고, 키 작은 남자뿐만 아니라 인기 없고 촌스러운 남자를 여자들이 싫어하는 것은 노자와 진화심리학자들의 견해가 짬뽕되어 나타나는 어떤 현상이 아닐까? 키 작고  남자는 진화심리학자들이 이야기하는 ‘비율’에 대한 감각을 풍부하게 지닌 여자들이 ‘아름답지 않다’고 볼 것이고, 인기 없고 촌스러운 남자를 싫어하는 것은 ‘인기 있고, 날씬한’ 남자들을 상대적으로 더 아름답게 보는 노자 관점을 지닌 여성들의 취향이 반영된 게 아닐까? 

 

 

자세란 영어로 ‘Posture’다. 라틴어의 ‘ponere’에서 나온 단어라고 한다. 영어로 ‘to place’이며, 풀어서 해석하자면 ‘인체의 각 부분이 있어야 할 곳에 위치해 있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올바른 자세란 기본적으로 앞에서 이야기 한 비율 좋고 균형 잡힌 자세를 말한다. 하지만 바른 자세가 단지 전후좌우 대칭으로 ‘정지된 상태’는 아니다. 겉으로 보기엔 정지된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내적으로 끊임없이 움직이며 ‘역동적인 평형 상태(Dynamic Equilibrium State)’를 이루는 것까지 합하여 자세라고 할 수 있다.⁴

 

 

현대의 자세 이론은 단지 골격계와 근육, 근막의 구조적 바름뿐만 아니라 신경계에 기록된 자세, 즉 자기-인식(self-awareness)을 바르게 하는 데 까지 나아간다.⁵ ‘인체의 각 부분이 있어야 할 곳에 위치’하도록 하는 교정 작업 외에도 인지운동을 통한 내적 자세 변화에도 그 관심을 기울인다.

 

인간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일정한 패턴으로 틀어진 자세로 나온다는 고돈 징크(J. Gordon Zink)의 일반보상패턴(CCP, Common Compensatory Pattern) 이론에, 탄생 이후 발달과정에서 생기는 다양한 반사이론도 자세를 바라보는 중요한 관점이다. 물론 진화심리학자들이 바라보는 ‘사바나법칙’, ‘이족직립보행’,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흉곽과 척추 변화에 미치는 영향’ 등과 같은 다양한 관점들도 자세를 이해하는 프레임을 형성하고 있다. 한 마디로 자세를 바르게 하는 작업은 인간을 통합적으로 바라보아야 가능한 예술의 영역으로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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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문헌>

1. 도올 김용욕, [노자, 길과 얻음]. 서울 : 통나무, 1995.

2. 앨런 S. 밀러. 가나자와 사토시, [처음 읽는 진화심리학] 박완신 옮김. 서울 : 웅진지식하우스, 2008.

3. John Smith, [Structural BODYWORK]. Elsevier, 2005.

4. Moshe Feldenkrais, [Awareness Through Movement]. Harper Collins, 1977.

5. Thomas Hanna, [Somatics]. Da Capo Press,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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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2년 5월 3일에 네이버 블로그에 올렸던 것을 다시 편집했습니다. 원본은 제 네이버 블로그에 있고, 현재는 비공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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